보랏빛 연가
* 오월의 숲, 그 전류와도 같은 사랑 *
조혜강
2008. 5. 27. 14:06
님이여! 어둠이 가시기 시작하는 여명의 길목에서 새벽 범종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간밤에 맺힌 이슬방울에서 지나가 버린 꿈을, 어깨를 살풋 스치듯 지나가 버린 젊음도 보고 있습니다. 삶이 요구하였던 사랑과 고뇌, 그리고 무서운 고독을 탐미하며, 자신과 대결하여야 했던 그 처절한 젊음을 말입니다. 나는 이제 나를 묶고 있던 나 자신을 감히 풀어 자연이 함께 하는 이 아름다운 서정 속에서 나를 부활하려 합니다. 님이여! 순수의 푸른 불길이 뜨겁게 달아올라 신명나게 번져가고 있는 오월, 눈 가는 곳마다 초록 세상이 열리고, 하늘에 뜬 푸른 산은 흰 구름 아래 창창하고, 초록 잎새를 단 하얀 꽃들이 산자락에 나란히를 하고, 산새의 노랫소리도, 숲을 돌고 도는 시냇물 소리도 푸름입니다. 칡넝쿨이 곁의 나무를 붙안고 기어가기 시작합니다. 숲은 가없는 살을 타게 하는 그리움으로 부활하여 가슴을 죄어 숨이 멎을 것 같이 황홀합니다. 나뭇가지를 찢으며, 굳은 땅을 뚫고 펼쳐졌던 신비로운 고통 앞에 자연은 모두가 사랑,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잎새 하나하나에 수줍게 내리는 햇살 진달래, 철쭉꽃이 지고 난 숲에는 또 다른 산꽃들이 주렁주렁 피어나고, 찔레꽃 향기 애잔하게 날리고 있습니다. 정말 오월은 자연이 가져다 주는 최상의 경지로 건강하고 아름다워 감격스런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으며 바로 생명, 그 열띤 호흡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님이여! 은밀히 속삭이고 싶은 계절! 내 영혼의 실핏줄 하나하나 말하지 않아도 얼비쳐나는 이 정직한 날들에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아름다운 것을 보면 무조건 눈물이 나고 무조건 그립고, 무조건 외로운 나를 하늘 아래, 땅 위에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 오늘 아침, 이슬 젖은 이른 아침 눈뜨자마자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신의 고동치는 심장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옵니다. 엄청난 담금질로 낮아지고 또 낮아지고 겸허해진 마음에 충분한 감사함으로 아침을 열게 하는 당신은 간절한 사랑! 간밤에 잠을 설치게 하였던 건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 때문은 아닌 듯합니다. 가차없이 능소화 빛으로 살을 타게 하는 그리움! 푸른 하늘에 한 가닥 흰구름으로 머물러 바라보고픈 간절한 그리움의 정서는 이 푸른 계절도 어쩌지 못하는가 봅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당신이 좋아하는 비의 노래를 듣습니다. '유리창엔 비'는 찻잔 속으로 내리고 나는 그 잔을 마십니다. 당신은 한 잔의 우전차가 되어 내 입술을 적시고 있습니다. 향이 그윽합니다. 당신의 내음이 그윽합니다. 당신으로 인한 많은 그리움...... 그것은 고독이 아니라 고독을 녹여내는 에너지 정작 삶의 의미,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영성의 빛이었습니다. 나의 사랑은 외로움을 채우려는 몸짓이 아닌 당신에게 깃든 영혼의 신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랑하게 됨으로 감히 지고지순의 이름으로 스스로 넘쳐나는 기쁨이며 자랑입니다. 님이여! 내가 시를 씀이 얼마나 다행인지, 만일 시가 아니었더라면 이 벅찬 사랑을 어떻게 연소할 수 있었겠습니까? 눈물이 흐릅니다. 빛이 쏟아지는 마음 뜰에 눈물이 가득 흐릅니다. 눈물은 보석처럼 빛나 사랑의 향기가 진동하는 듯합니다. 충분히 사랑 받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윤 나고 싱싱합니다. 숲속의 자랑스런 저 나무들! 산촌의 계곡물 소리, 산새 소리, 솔바람 소리, 세상과의 아름다운 소리 그 모두와 화음을 이루며 싱싱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든 유기체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언어로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고 있어 세상은 참 아름답습니다. 호화롭고 찬란하여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성실하고, 간절하게 그 생명을 소진하고 있기에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있어 아픔이 있는, 그리움이 있는, 그래서 성숙을 향한 인고의 자리가 있는 내 건강한 삶과 사랑, 그리고 고독 이 모두와 며칠 남지 않은 건강한 오월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 - 혜 강 -(2008.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