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하나로 잇는 사랑
'울산 생명의전화(Ulsan Telephone LifeLine)' 제17주년 기념식 및 제24기 상담원
교육 수료식이 12월 8일 센터 내 교육관에서 개최되었다. 개회사에 이어 식순대로
식을 거행하는 동안 뇌리에는 지난 17년간의 세월이 필름처럼 숨 가쁘게 지나간다.
상담원 자격으로 첫 전화를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스러웠던
일.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그 문제 속에 갇혀있는 내담자들을 만
나는 동안 나만 외롭고, 힘들고 특별하게만 여겨졌던 삶이 그래도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음을. 내담자의 문제를 듣고 있는 동안 내 역동이 일어나 오히려 내가 더
분노하며 치를 떨었던 역전이 현상, 살면서 힘들게 겪었던 일들이 마치 상담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인 듯 내 경험적 산지식을 많이 활용한 일 등이 떠올랐다.
자신 하나 추스를 수 없을 만큼 허기진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 이상으로 정신적 지주였고 나를 많이 사랑했던 큰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정신이 거의 오락가락하였다.
삶이 버거워 살아가는 것인지 살아내는 것인지조차 인지가 힘들었던 나날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명제(命題)만이 나를 압박하던 날들에 나는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과 사랑과 수용과 지지를 외면한 채 많은 일 속에 자신을 가두면서
힘들게 살았다. 그러던 17년 전 2월이었다. 그 당시 대개 그렇듯 상담의 불모지인
울산에 생명의전화가 태어났다.
문제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마는 세상에는 참 많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 삶은 눈에 보이지만 남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나만 힘들고 다른 사람들
의 삶은 퍽도 평화롭게 보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
지 않았다.
선 하나로 잇는 사랑!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정서적 교감이 일어나야 한다.
17년 동안 많은 내담자들을 만났는데 나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들의 아픔을 경청하면서 공감하고, 수용하고, 때로는 함께 울고, 때론 기뻐하기도 하
며 온전히 나를 주려 애썼던 그 시간들은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는 에너지가 되었다. 피
폐된 영혼이 생기를 얻고, 얼어붙었던 감정들이 녹기 시작했다. 사는 문제 외는 눈에 들
어 오지 않았던 아름다운 대상들이 서서한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오기 시작했다.
문학의 꿈도 다시 소생되어 나래를 펴며 허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깊은 샘소에 갇혀버린 어휘들이 굳은 땅을 힘겹게 뚫고 나오듯 하나 둘 발아되기 시작
하고, 그것들은 햇볕을 받아 숨을 쉬고, 수분을 빨아들이며 성장을 향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사는 동안 나를 괴롭혔던 정신적 외상은 나를 성장시키는 영양제였다는 걸. 나의 교만
과 부족함을 가르쳐 겸허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는 걸. 지금 와
서 생각하면 모두가 감사할 뿐이다. 내가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담자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정신적 성장'으로의 지향점을 찾은
셈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 위에서 생명의전화를 통해 얻은 나의 정신적 재생인 성장으로의 여행
은 계속될 것이다. 좁은 자아를 버리고 넓고 깊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때론 버
거울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나를 따라다니는
근원적인 외로움과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자존감을 높이고, 진심과 일치성으로 나를 수용하고
지지하며 본격적으로 나를 사랑해야 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제대로 알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명의전화는 호주의 시드니 중앙감리교회의 알렌 워커(Alan Walker) 목사에 의해 구
상 되어 1963년 3월 16일 토요일 오후 5시 역사적인 개통을 하게 되었다. 4년간의 계획
과 기도와 노력이 주춧돌이 되어 결실을 보았다. 풍요해 보이기만 하던 시드니에 다음
날 밤중까지 111건의 심각한 전화 상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생명의전화 운동이 계획되기는 1971년이다. 당시 650만 인구를 헤아리는
대도시 서울에서 전화카운셀링 사업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아가페의 집' 사업을 구상하였고 이 사업추진위원회에서는 먼저 생명의전화 운동에 필
요한 연구와 자료를 수집하고 여러 나라에서 전개하고 있는 전화카운셀링 사업의 운영
현황과 실태 파악에 나섰다.
생명의전화 준비 작업이 더욱 구체화 된 것은 1976년이다. 상담원 훈련계획을 수립하고
5월에 제1회 상담봉사원 훈련을 시작하였다. 자원봉사자 교육은 성황을 이루었고 7월
8일에는 제1기 자원봉사자 161명을 수료시켰다. 드디어 1976년 9월 1일 정오에 상담전
화가 개통되었다. 생명의전화가 생명을 가지게 된 첫날의 상담이 모두 4,158통으로 한
대의 전화로는 세계적 기록이 되었다.
생명의전화 운동은 차츰 지방으로 확산되어 1978년 부산 생명의전화가 개통되고, 충주
센터가 1983년에 이어 1985년에는 인천, 대전, 대구 등의 센터 순으로 생명을 이었다.
지금은 한국 연맹 내에 울산을 비롯한 18개 센터가 있고 현재 추진 중인 센터도 두 곳이
나 있다.
울산 생명의전화는 1992년 2월에 개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담 전화는 (052) 267-9191(구원 구원)이며 각국(局)에 9191번은 한국 내의 모든 지역
센터에서 사용하는 상담 전화로 내담자가 갖고 있는 문제로부터 '구원'을 의미한다.
울산 생명의전화는 센터 내에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와 성폭력상담소 그리고 법률/의료
자문위원으로 구성된 종합상담실이다.
- 혜 강 - (2009.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