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풍경 달기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
조혜강
2010. 6. 14. 14:04
늘 취해 있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이것만이 문제다. 어깨를 짓눌러 당신을 땅으로 궁글리게 하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노상 취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건, 시에건, 미덕에건, 당신 뜻대로, 다만 취하기만 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물 위에서나, 당신 방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이미 취기가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보라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말하는 모든 것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해 주겠지.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구애 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해라. 항상 취해 있으라. 술에건, 시에건, 미덕에건, 당신 뜻대로."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의 널리 알려진 산문시 '취하라'로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 Le spleen de Paris>에 실려 있다. 삶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시간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좁은 자아의식에서 벗어나 무언가에 도취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는 시이다. 살면서 미쳤다는 소리를 주위 사람들에게서 들어 본 사람은 무언가에 목숨 걸고 도전하는 사람이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하고, 도전하는 것은 당당함이다. 이는 살아있다는 존재의 확인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어떤 일이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서 그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절정에 취해 있는 사람이다. 그 일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것이 바로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 라고 딱 꼬집어 말하고 싶다. 즉, 언제나 무엇인가를 창조적으로 생산하는 것, 항산(恒産)이 없으면 언제나 변함없는 그러한 마음, 항심(恒心)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과 미덕과 우정과 사랑, 심연 속에서 한 올 한 올 건져 올리는 시작(詩作) 등 무언가에 심취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혼을 사르는 아름다운 작업인 것이다.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다" 이 말은 전국시대의 맹자(孟子:B. C 372-289)의 말이다. 맹자보다 약 350여 년 전의 춘추시대에 경제에 중점을 둔 정치가 관자(본명 管仲)는 "의식(衣食)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 고 했으며 공자도 "小人은 궁하면 람(濫) 한다." 했다. 맹자의 '항산 무항심' 생계(生計)의 기반이 되는 자산이나 샐러리맨의 봉급과 같은 일정한 수입이 없는 자는 마음의 안정이 없 다는 뜻이고, 의식(衣食)이 궁한 자는 예절을 알아서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의미이다. 공자의 말에는 '人' 전제로 붙어있으나 오늘의 세상에서 공자와 같은 "大人"은 지극히 드물다. 람(濫)한다는 것은 마음이 흐트러지고 자제심을 잃어서 무슨 나쁜 행위를 할지 모른다는 뜻이다. 위 성현(聖賢)의 말은 표현이 다를 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동일하다고 본다. 빈곤해서는 인간구실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여겨진다. 즉, 언제나 무엇인가를 창조적으로 생산하는 것, 항산(恒産)이 없으면 언제나 한결같고 변함없는 그러한 마음, 항심(恒心)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것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라도 좋고, 자신의 영혼의 샘물 을 길어내는 '시작(詩作)'이라도 좋고, 산행이라도 좋겠다. '사랑'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고, 자신이나 누군가를 위한 염원인 '기도' 라도 좋지만, 그러한 '항산(恒産)'은 단절되지 않은 언제나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것으로 그러면서도 싫증을 내지 않고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그러한 어떤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없는 사람은 때때로 삶이 무의미 하고, 변덕이 심하고, 화를 자주 내어 주위에 얼음처럼 찬 냉기를 뿜어 주위를 얼어붙게 하여 자신은 더욱 외로움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고 본다. 즉 우리 모두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어떤 '일'을 발견해서 그 일에 몰입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의 절정에 취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이는 세상을 다 품안에 안고 있는 사 람, 행복의 극치라고도 말하고 싶다. - 혜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