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작은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무릎이 아파 20여 일간 고생을 하더니 통원치료를 하여도 효력이 없어 수술을 하기로 하였다. 병명이 '염증성 활악막염'으로 무릎 관절 부위에 염증이 생겨 통증이 심하였다. 수술을 하고 누워있는 작은언니를 보니 많은 생각이 가슴을 누른다.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건강하고, 일을 잘하고, 깔끔한 언니에 비해 나는 병치레가 잦고, 일을 못하고, 공부만 하면서 집안일은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동네어귀에 있는 우물을 길어다가 바가지까지 철철 넘치게 담아 놓고 장독대는 물론 화장실까지 깨끗이 청소를 하고는 학교로 가는 작은언니는 내 수발까지 들었었다.
저녁마다 교복바지에 물을 뿌려 요 밑에 깔고 누워 아침이면 칼날처럼 줄을 세워서 나를 입혀 보내고 교복은 물론 옷가지까지 깨끗이 빨고 다려 반짝반짝 윤나게 하였다. 할머니와 엄마도 계시고, 올케언니와 큰언니도 있었지만 내 수발을 담당하고 나선 사람은 세 살 위인 작은언니였다. 보리농사가 흉년이 들어서 무를 자잘하게 썰어 솥 밑에 깔고 위에 쌀을 얹어 밥을 하면 무 냄새가 나서 밥을 먹지 않은 나를 위해 모닥불을 피워 냄비에 따로 밥을 해 주는 사람도 작은언니였다.
그렇게 잘해주는 데도 나는 작은언니를 별로 따르지 않았나 보다. 어렸을 적 나는 큰오빠와 큰언니를 제일 좋아했다. 큰오빠는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월급 때마다 선물을 많이 사 오셨다. 다른 아이들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을 때, 언니와 나는 오빠가 사다주신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가면 반 아이들이 부러워 쉬는 시간에 한 번 신어 보자고 하면 마음에 드는 아이에게만 신어 보라고 한 것 같다. 큰오빠가 다녀가시며 늘 우리들―큰언니, 작은언니, 나, 내 동생에게 물어셨다.
"무엇을 갖고 싶으냐?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라. 다음에 오빠가 월급 타 올 때 사 갖고 오마." 그러면 우리들은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려 무엇을 사 오라고 요구가 많았다. 그러면 큰오빤 어김없이 꼭 사 오시곤 하셨다.
큰언니는 언제나 내게 잘해주셨다. 언니의 예쁜 옷을 내가 입겠다고 떼를 쓰면 내게 꼭 맞게 줄여서 주시곤 했다. 친구 집에 놀러갈 때도, 영화 구경을 갈 때도, 어디 좋은 곳을 갈 때 나는 늘 큰언니의 손을 붙들고 다녔다. 그래서일까 큰언니가 시집을 가버리자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았다. 학교에 갔다 오는 길에 종종 큰언니 집에 들려 놀다오고, 어떤 땐 며칠을 그곳 에서 학교에 다니곤 했다.
일 잘했던 작은언니는 학교 갔다 오면 교복을 벗어놓고 일복으로 갈아입곤 타작을 하여도 머슴 들보다 더 힘이 세어 도리깨질을 하면 타작마당이 쿵쿵 소리를 질렀고, 벼 베기 할 때도 머슴보 다 앞장을 섰다. 그런 언니를 아버지께선 늘 일 잘한다고 칭찬을 하셨으며, 나는 일 시킬까 봐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 그 날 배운 부분을 복습하고 해가 지고 깜깜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살아오면서 작은언니는 일을 많이 하고 살았지만, 나는 일을 피해 산 것 같다. 지금도 커튼 등은 언니가 세탁해 주고 힘 든 일이 있으면 늘 언니가 도와준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이 아프다고 한다. 초봄부터 치아가 아파 몇 달 고생했는데 또 결막염을 알아 몇 달 고생하다 끝내 무릎 수술까지 받았다. 그래도 수술경과가 좋아 다음 날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듯 자주 웃곤 하는 모습에서 다소 마음을 놓았지만 자꾸만 불쌍한 생각이 들고, 건강이 좋지 않아 절망과 고통을 홀로 삭이고 있어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지금 시대였더라면 아마도 가수가 되지 않았을까?
가사를 얼마나 많이 외는지 노래도 참 잘 한다. 음식 솜씨가 좋아 손이 닿은 음식은 모두 맛나다. 한 달 동안 입원해 있는 동안 십자수를 놓아 문병 온 사람들에게 한 가지 씩 선물할 거라고 심심 하지 않아 좋다고 한다. 성격이 싹싹하고 강점이 많은 사람이다.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나이 들어가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제일 두려운 것이 건강이 아닐까 한다. 몸도 문제지만 자꾸만 아프니까 마음이 갈앉아 무기력해지니까 몸도 따라 드러눕게 되는 것 같다.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는데 우울하지 않고 밝은 마음으로 건강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년에는 작은언니의 몸도 마음도 부디 건강했으면 하고 두 손을 간절히 모아 본다.
- 혜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