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아름다운 동행

조혜강 2014. 6. 24. 11:27

산 설고 물설고 낯도 선 땅에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얘야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 제치니

찬바람 온 몸을 때려 뜬눈으로 날을 샌 후

 

"얘야 문 열어라"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

 

허형만 시인이 부친상을 당한 후 부친을 그리며 쓴 시가 너무 가슴에 와 닿아

소리꾼 장사익 선생이 곡을 붙여 부른 노래이다.

 

지난 615일에 울산청소년상담소장인 이선생과 불교 최초 완화의료전문병원인

자재요양병원 개원 대법회에 참석하였다. 휴일이라 산장에서 조용히 쉬고 싶었

는데 장사익 선생이 오신다기에 들뜬 마음으로 달려갔다.

 

불교 청년 천공회(대학에 출강하는 성악교수들의 모임) 단장의 진행으로 성악가

들의 노래가 끝난 후 온몸으로 전율하듯 부르는 장사익 선생은 산위에서 부는 바람,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찔레꽃, 비 내리는 고모령, 봄날은 간다, 동백아가씨,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등 7곡을 연달아 불렀다. 병원 마당에 햇빛 가리개도 없이

따가운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많은 불자들이 가득 대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장사익 선생이 강변의 물살처럼 자그마한 체구를 아래 위로 사알살 흔들어 리듬을

타며 부르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애를 끊어내는 절규인지 모른다. 사람의 영혼을

잡아끌며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신기루,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숨을 죽인 듯

몰입하다가 끝나기가 무섭게 쏟아지는 갈채의 소리!

 

다섯 번째 '봄날은 간다'를 부를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무대 위로 스님 한 분이 나비

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장삼의 넓고 긴 소매를 펄럭거리며 장엄

하고 화려한 춤사위를 벌이는 스님을 보니 몇 년 전 어느 산사음악회에서 노래하는

설운도 곁에서 춤을 추는 동영상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바로 그 스님인

하유스님이었다.

 

장사익 선생의 노래와 하유스님의 넘치는 끼의 춤사위로 벌이는 협연은

신명과 웃음과 환호의 절정을 이뤘다. 고깔모자를 쓰고 추는 승무나 바라춤이 아닌

느끼는 대로 그냥 즐겁게 흔들어 대는 막춤형이다. 하유스님은 안동시 영수사 조계

종 스님으로서 전생에 720년 전 인도 봄베이에서 흰두춤을 추는 무희였다는 설이 있

을 만치 춤사위가 화려하고도 능란하고, 특히 법고로 유명한 분이다.

 

연달아 부르는 장사익 선생의 6번째 노래가 끝났다. 모두가 앵콜, 앵콜을 요청하니

선생은 7번째 노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르신 후 무대를 내려가셨다.

 

다음 공연을 뒤로 하고 그곳을 나와 구영리에 있는 '정나루'에서 저녁을 먹은 후

이선생과 아쉬운 작별을 나눈다. 둘이 오붓하게 이런 시간을 가진 지가 한참 만이다.

서로 하는 일이 다르다 보니 시간이 맞지 않아 마음을 모질게 먹지 않으면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좋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헤어질 때 이 선생은 내게 말한다. "선생님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있어 사는 힘이 된다고."

나 또한 말한다. "사는 동안 지지할 거라고, 그리고 나도 이선생의 지지를 받고 싶다고."

인간관계에서 무조건적인 지지와 수용을 보내는 관계는 흔치 않다. 나는 이 선생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와 수용을 보내고 싶다. 현재 잘 살고 있는 예쁜 삶의 모습은 선생의

지나온 삶의 결과물이기에,

 

- 혜 강 - (2014.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