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 섬마을 기행 *

조혜강 2006. 11. 15. 17:12

바다는 자연의 섭리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

없지만, 길은 사람의 것이어서 섬에서 섬으로, 마을에서 마을

사이로 또한 마을에서 섬으로 연결되어 섬에 갔어도 마을로 되

돌아온다. 길은 그 길을 오가는 사람의 것이다. 늦가을의 섬들은

다 적막하다. 달리는 자동차 소리에도 바닷새들은 놀라지 않는다.

 

지난 114일 오후 3시 부산 여객터미널에서 옥포 행 배를 탔다.

옥포까지는 45분 걸리는데 모처럼 바다를 헤엄치는 것 같아 기

분이 좋았고, 목련 언니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가슴이 설레었다.

 

뱃머리에는 여행하는 동안 우리를 안내해 주실 이 지방의 유지

이자 유명한 화가 선생님이 나와 우리를 반겨주셨다. 단풍이 빨

갛게 물든 산길을 돌고 돌아 화가 선생님 댁에 도착하여 차와 과

일을 대접받았다. 선생님 댁은 노송이 빼곡이 들어찬 숲 속에 바

다를 끼고 앉아있어 자연경관이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곳을 나오니 열 나흘 달님이 차창에 매달려 따라다닌다. 불빛이

꽃불처럼 내리는 바닷가에서 저녁으로 해물탕을 먹고는 바닷가를

산책한 후 노래방에 가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시간이 다 되어

음악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마이크를 잡고 셋이서 30분간 노래하

며 춤을 추었는데 음악 나오는 것보다 더 흥겨웠다.

 

115일엔 몽돌해변으로 가는 도중에 '자연예술랜드'에 들렀다.

이곳은 능곡 이성보 님이 사제를 털어 조성한 곳으로 제 1전시실

엔 자연이 빚은 갖가지 형상석과 석/목부작의 품격 높은 조화미로

이뤄지고, 2전시실은 돌과 풀이 들려주는 신비한 자연이야기,

3 전시실은 기암괴석과 2백여 점의 석/목부작이 어우러진 자연

의 향연, 그리고 십이지 연목, 목공예 전시실, 석림지실 등으로

그 규모가 엄청났다.

 

몽돌해변으로 가서 언니와 해변을 걸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로 인해 해변은 하얀 포말로 가득하다. 화가 선생은 사진을

찍는다. 내가 얼굴 나오는 거 싫다고 하니까 옆모습이나 뒷모습

만을 담는다고 했다. 울산의 정자 해변처럼 모래가 아닌 몽돌이

해변 가득 깔려있다.

 

해변 끝에는 울창한 소나무로 된 산이 있었는데, 그 산으로

오르는 길이 '그물개(학동) 오솔길'이다. 이 길은 산 위로 쭉

올라가는 나무계단을 놓았다. 한 칸 한 칸 얼마쯤 계단을 오르

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씩 내리기에 끝까지 올라

갔다 내려오는데, 도중에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뛰다시

피 차 있는 곳으로 와 차를 타자마자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휴! 다행이다.

 

그물개란 '학동 해변'이 그물을 펼쳐놓은 형상과 같다하여 붙여

진 이름이다. 오솔길로 올라가는 입구에 글 한 편이 붙어있다.

 

"산다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그리고 길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도, 마음 속에도 있음을

우리들은 아직도 헤아리지 못한 채

기대와 설레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해금강이 마주 보이는 곳에 '바람의 언덕'이 있는데 이곳을 걷는

동안 비가 오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길은 미끄럽고 위험했지

만 바닷가에 누워있는 너른 바위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중에 되돌아오고 싶었지만 끝까지 갔다와서 기분이 좋았다.

 

바람의 언덕이란 지명도 최근에 이 지역을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생겨난 것으로 여겨지며 일반인들에겐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

다고 한다. 바람의 언덕은 원래 키 작은 띠풀이 많은 곳이라 흑

염소를 방목한 곳이었고, 마주 보이는 아름다운 해금강을 바라보

며 여인네들이 삶의 시름을 달래기도 하고, 멀리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길 학수고대하며 서 있던 전망대였다고 화가 선생

님이 얘기하셨다.

 

심으로 회비빔밥을 먹고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향했다. 지방 유지이자 유명한 화가 선생님 덕분으로 입장료를

내지 않고 공짜로 들어갔다. 구름이 끼고 한차례 비가 내린 탓도

있지만 음침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은 한국전쟁 중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들을 집단으로 수용하

던 수용소로 약 132,000명의 포로가 수용되어 있었다고 한다.

'디오라마관'으로 들어가니 그 당시의 배경과 상황, 인물, 역사

적 사건 등이 한 눈에 들어왔다. 디오라마(Diorama)란 입체 소형

모형에 의한 실경(實景)으로 작은 공간 안에 어떤 대상을 설치해

놓고 틈을 통해 볼 수 있게 한 입체전시이다.

 

관람 순서대로 여러 곳을 둘러보다 그 당시 미군의 무도회 장으

로 쓰인 공간을 그대로 보존해 놨는데 그곳에서 나는 꼭지점 춤

을 췄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뜸한 시간이라 신나게 춤을 췄고,

화가 선생님이 디카로 사진을 찍었는데 재미있게 나왔나 보다.

 

기행은 풍경도 중요하지만 음식맛 또한 중요하다. 섬지방의 특

유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는데 어느

횟집에 들어가니 멍게 비빔밥이라는 메뉴가 있어서 먹어보기로

하였다. 멍게를 자잘하게 다져서 여러 양념으로 버무린 것 같다.

시원한 지리국물에 각종 반찬이 나오는데 근사했다.

 

116일 아침에는 청마 유치환 님의 생가로 갔다. 거제 둔덕면

은 한국 문학의 거두 청마 유치환 선생의 고향마을이다. 거제시

에서 둔덕면 그의 고향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청마 선생이 노

래한 <둔덕골> 시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거제도 둔덕골은

8대로 내려 나의 부조(父祖)의 살으신 곳

적은 골안 다가 솟은 산방(山芳)산 비탈 알로

몇백 두락 조약돌 박토를 지켜

마을은 언제나 생겨난 그 외로운 앉음새로

할아버지 살던 집에 손주가 살고

아버지 갈던 밭을 아들네 갈고

베 짜서 옷 입고

조약 써서 병 고치고

그리하여 세상은

허구한 세월과 세대가 바뀌고 흘러 갔건만

사시장천 벗고 섰는 뒷산 산비탈 모양

두고 두고 행복된 바람이 한번이나 불어 왔던가

- <둔덕골 중에서 > -

 

청마 유치환 님은 문예월간지 "정적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자연에 대하여 한없이 심취했다. 특히 산이나 바

, 산사를 무한히 사랑했으며 또한 파도나 바위 등의 무생물을

무척이나 사랑하여 이들을 소제로 주로 글을 썼다. 이러한 물성

에 대한 깊은 애정은 가시적인 것보다 내적인 순수성을 지향하는

자기표현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어구마을에서 카페리호(을지2)를 타고 한산도로 들어간다.

산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과 정기가 서린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덕수이씨로 154538일 새벽에 한양 건천동에서 부친

이정(李貞)과 모친 변씨(卞氏)3남으로 태어났다.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가 단정하여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으나 안으로는 담기

가 있었다고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말하고 있다.

 

옥빛 물살이 찰랑거리는 바다는 섬 속의 작은 호수인 양 제 몸으

로 유적지를 두 팔로 품고 있다. 가을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

리고 바다와 하늘, 그 하늘을 선회하는 갈매기들의 원무와 어울려

유적지는 마치 수채화 한 폭처럼 아름다웠다.

 

사적 제 113호인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지 경내로 들어간다. 매표

소를 지나 제일 먼저 마주하는 제승당의 초입 관문인 한산문으로

들어가니 우물이 있다. 이곳에서 물을 마셨는데 이 우물은 바다와

인접해 있어도 짠맛이 전혀 없고 수질이 매우 좋으며 양도 풍부하

여 충무공이 제승당에 계시던 38개월 동안 식수공급을 했던 우

물로 각을 지어 보존하고 있다.

 

우물을 지나 대첩문, 충무문으로 왔는데 충무문 입구에는 아래의

글이 있다.

 

이 충무공 정신

1. 멸사봉공의 정신

2. 창의와 개척정신

3. 유비무환의 정신

 

다시 행적비를 지나 수루에 올랐는데 이곳은 적의 동정을 염탐하던

망루이고, 충무공께서 이곳에 홀로 앉아 우국 충정의 시를 읊은 곳

이기도 하다. 수루 중앙에는 승전고가 놓여저 있다. 다음으로 행적비,

제승당, 과녁, 한산정, 홍살문, 한글유허비, 외삼문유허비, 정화기념

, 내삼문, 충무사/영당이 있는데 충무사/영당은 이순신 장군의 영정

을 모신 곳이다. 원래 '충무영당'이라 하였으나 규모가 협소하여 1976

년 정화사업 때 경역을 확장하여 새 영종을 모시고 충무사라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외따로 떨어저 있는 '과녁'은 한산정과의 거리가

145m이고 사선에서 볼 때 바다 건너 과녁이 있는 활터는 우리나라 전

역에서 오직 이곳뿐이다.

 

충무공 유적지 제승당을 나와 한산도 일주를 하기로 하였다. 산과

바다를 좌우로 끼고 절정인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 마주 보는 섬들

로 인해 바다는 자그마한 호수 같고, 양식장이 많아서 매일 보는

동해와는 다른 얼굴이다.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며 입심 좋은 화가

선생님의 유머와 위트에 나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이 여행에서

일 년 내내 웃을 수 있는 웃음의 양을 한꺼번에 웃었다는 것이다.

 

섬 동쪽 끝에 있는 장작지 마을의 가고파 식당에서 점심으로 돔구이

를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반찬으로 섬 지방 특유의 각종 해산물이

많았다. 장작지 마을에서 보이는 빨간 등대 위에 갈매기가 기웃거리

고 있다. 아마도 한낮의 오수를 즐기려고 좋은 장소를 물색하는 듯

보였다.

 

차는 다시 서쪽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기어간다. 산자락 굽이굽이

돌아들면 호수 같은 자그마한 바다와 점점이 들어 선 섬과 고기 잡

이 배들 하늘을 선회하는 바닷새들, 그 아름다운 풍경에 소녀처럼

마냥 들떠서 어마나! 저것 봐라! 하고 연신 탄성을 질러대니 화가 선

생님은 웃으시며 아직도 소녀처럼 철이 없다고 핀잔을 주시곤 했다.

 

서쪽 끝이 여차 마을이다. 더 이상 길은 없다. 아쉬운 마음에 차에서

내려 바닷가에 선다 바닷가 돌에는 틈이 보이지 않을 만치 자연산 굴

이 다닥다닥 하얗게 붙어 있다. 차는 다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어구

마을로 돌아오기 위해 소고포도선장으로 향한다.

 

소고포도선장에서 430분 배를 타고 어구마을로 향하며 약속한다.

"건강하게 살다가 10 년 후에 다시 만나 셋이서 여행을 하자고 손가

락을 걸면서." 장승포에 도착하여 아담한 식당에 들어가 추어탕을

먹는데 식당 아주머니의 자태가 곱고 음식이 맛깔스러웠다. 아주머니

에게 고운 자태만큼 음식도 깔끔하고 맛있다고 했드니 고운 미소를

지으셨다. 후식으로 커피가 있다고 하기에 밤이라 커피는 좀 그렇고

녹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근처 가계에 뛰어가서 사 갖고

와서 따끈한 녹차를 마시게 해 주시기도 하였다.

 

여행의 마지막 날인 117일 아침 여객터미널에 갔는데 풍랑이 일어

배가 출항하지 않았다. 마침 부산에서 온 택시가 있어 타고 부산으로

왔다. 바다는 그리움이 짙으면 불쑥불쑥 섬을 토해내는가 보다, 크고

작은 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남해! 길은 섬과 섬 사이를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길을 따라 뻗어 가고 있다.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좋아하는 언니와 함께 하기도 했

지만 34일 동안 내내 유명인사의 안내를 받으며 사람의 그림자가

뜸한 조용한 곳을 여유롭고 재미있게 구경했다는 것이다. 굴 양식과

한려수도의 국립공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설치한 해수오염

방지 해역으로 이 일대에는 유조선의 항해와 공장 설립이 금지되어

있는 아름다운 청정 수역이다.

 

여행 도중에 모든 면을 배려해주시고 밝은 분위기를 조성하신 가슴이

따뜻하신 언니께 감사드리고 싶다. 병원에 들러 서울 댁으로 가셔야

하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기에 아쉬웠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안내해 주시고, 줄곧 유머와 위트로 웃음을 선물

하신 화가 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10 년 후를 어찌

기다릴까? 가까운 시일에 또다시 그곳을 방문하여 못 본 여러 곳을

구경하며 웃고 떠들며 재미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 혜 강 - (2006.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