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 여행의 멋을 찾아서 *

조혜강 2006. 11. 29. 10:50

 

 

 

 

순천만의 갈대밭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끝없는 갈대밭 위로 까

맣게 덮어 날아들며 원무를 하는 수천 마리의 철새 떼가 황혼에 물들어

눈부시다. 갈대 사잇길을 지나 1km 산길을 올라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

본 장엄한 일몰은 지극히 그리운 이를 생각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나오 듯 그렇게 눈물이 흘렀다. 갯벌 위로 먼 산과 하늘이 보랏

빛으로 물들어 가는 만추의 정취는 하루의 일상을 겸허히 누이고 새로운

내일의 약속을 기약하는 듯 목이 메이도록 아름다워 눈물겨운 빛이다.

 

1124일 아침 남편과 함께 울산에서 출발하여 진주, 사천을 지나

창선, 삼천포대교를 건넌다. 다리 좌우로 섬들이 떠 있고 큰 섬

엔 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마을 풍경이 그림 같다. 남해

일주를 하고 남해대교를 건너 하동으로 들어서니 왼쪽으로 아름다

운 섬진강이 나온다. 드라이브 코스의 백미로 알려진 이곳을 달리

니 소녀처럼 가슴이 설레인다. 날씨는 구름이 끼어 더욱 좋다.

 

산자락을 안고 도는 섬진강, 건너 모래밭이며 강 유역에 들녘이 있

고 차창을 여니 불어오는 강바람의 시원한 감촉과 그 강물 위를 물

들이는 가을 산의 붉은 빛에 마음을 적시며, 조금 전에 떠나온 남

해와 더불어 꿈속처럼 전개되는 피안의 자연에 눈을 팔고 있다.

마을 길을 따라 맨 처음 찾아간 곳은 <토지>에 등장하는 복원된 최

참판 댁이다. 입구 '녹차고을'에서 '특우전차' 한 잔을 들고 향에

취하니

"靑山은 내 뜻이요

綠水는 님의 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최참판댁으로 가는 도중에는 물레방아가 있고, 임이네, 두리네,

이네, 칠성이네 등이 살았던 초가집이 보인다. 집안에는 장독이며

살림집기들이 그대로 있어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장면들이 생생

하게 떠오른다. 칠성이네 집 앞에는 목화밭이 있었는데 다래가 많

이 달려있고 목화 꽃도 더러 피어있다.

 

과거의 영화를 간직한 웅장한 대가의 대문 앞에 서니 악양들판과

굽이진 섬진강이 한눈에 펼쳐진다. 최참판댁은 안채, 별당채,

랑채, 초당으로 이뤄졌으며, 좌측엔 김훈장네, 김평산네, 맨 위쪽

은 평사리 토지문학관이 있다. 어둑해진 길을 더듬어 내려오는 길

에 옛 장터를 지나니 지리산 위로 초나흘 초승달이 길을 밝힌다.

다소곳한 달빛을 우러러 나는 유년시절 가족들의 사랑에 둘러쌓여

마냥 행복했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흐뭇함에 취해 걸었다.

 

다음 코스인 쌍계사 입구까지 드라이브를 하고 근처 마을로 와서

'설송'으로 들어갔다. 주인한테 자신 있게 권하고 싶은 게 뭐가 있

느냐고 하였더니 참게탕이라 하였다. 이곳 특산물인 참게탕과 제첩

국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설송이란 가계 이름은 어느 스님이

지어셨다고 한다.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 탁자를 만들어 운치가 있

고 찬이 깔끔하고 맛이 있었다. 후식으론 작은 크리스탈 주전자에

국화를 띄운 노오란 국화차가 나왔다.

 

25일 아침은 햇볕이 쨍쨍하다. 칠불사는 쌍계사 입구에서 한참을

가야 하므로 먼저 다녀와서 쌍계사를 가기로 한다. 산자락과 길옆

은 온통 차밭이다. 한참을 달려 깊은 산 속에 칠불사가 있다. 마을

에서 이곳까지 좌우로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반야봉 남쪽 해발 약 800m 고지에 자리잡은 칠불사는 삼국

시대 초기 김해지방을 중심으로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가야, 일명

가락국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의 열

왕자 중 4남부터 10왕자까지 일곱 왕자가 그들의 외삼촌인 범승 장

유보옥선사를 따라 이곳에 수도한 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하였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칠불사하면 아자방(亞字房)을 떠올릴 만큼 아자방이 유명한데 이는

신라시대 담공선사가 선방건물의 구들을 아자(亞字)형으로 놓은 것

에서 유래한다. 초기에는 한 번 불을 때면 100일 이상 따뜻했다고

하는 이 아자방은 이중 온돌 구조로 되어 있으며 워낙 유명해서 중

국 당나라에까지 알려 졌는데 이 온돌은 수평인 곳이나 수직인 곳,

높이 있는 좌선처나 낮은 경행처 모두 똑 같은 온도를 유지하여 탁

월한 과학성을 자랑하기 때문에 1979년 세계건축협회에서 펴낸 "

계건축사" 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칠불사 아자방(亞字房)에 걸려있는 주련(柱聯)을 살펴보면

千峯盤窟色如籃(천봉반굴색여람) 천 봉우리 깊은 골짜기 쪽빛처럼 푸르고

誰謂曼殊是對談(수위만수시대담) 그 누가 말하리 문수 만나 이야기했다고

敢笑淸凉多少衆(감소청양다소중) 우습다 청량산 대중이 몇이냐고 하니

前三三與後三三(전삼삼여후삼삼) 전 삼삼 후 삼삼이라 함이여

曇空手藝遠聞唐(담공수예원문당) 담공선사 빼어난 솜씨 멀리 당에 알려졌고

來自金官築亞房(내자금관축아방) 금관가야에서 오시어 아자방을 축조하셨네

巧制奇功窺不得(교제기공규부득) 정교한 공법 기이한 공적 엿볼 수 없으나

令人千萬費商量(영인천만비상량) 사람들로 하여금 천번만번 생각케 하네

松風秋月斑圓石(송풍추월반원석) 솔바람 가을 달은 바위에 비춰 어리고

枯木花開劫外香(고목화개겁외향) 고목에 꽃이 피니 영겁 밖의 향기로다

他年與我來相見(타년여아내상견) 훗날 나와 더불어 만나게 되면

臨濟狂風現一場(임제광풍현일장) 임제선사의 선풍이 한 바탕 나타나리

 

심산의 향기에 취한 차는 칠불사를 뒤로한 채 쌍계사를 향하여 서

서한 발걸음을 놓는다. 쌍계사 본사는 신라 성덕왕 21년에 대비 및

삼법 두 화상께서 당나라에서 육조 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와서 "

리산 곡설리 갈화처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범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절을 지어 조사를 봉안하고 옥천사라 이름하였다. 이후

문성왕 2년에 우리 불교 범패종장이신 진감국사께서 중국유학을 마

치시고 다종자를 가지고 오셔서 이곳 지리산 주변에 심으시고 대가

람으로 중창하시니 뒤에 정강왕께서 선사의 도풍을 앙모하여 "쌍계

"라는 사명을 내리셨다고 한다.

 

사찰 주위는 꽃이 지고 잎이 새파랗게 핀 꽃무릇(상사화)이 많았다.

빨간 꽃이 경내를 불처럼 태웠을 열정의 시대를 떠올려 본다.

화개장터는 마을로 되돌아 와 입구의 다리를 건너면 된다.

조영남의 노래가 떠오른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지금은 매일 장이 선다고 한다. 장터를 쭉 둘러보고 오미자, 차나무

 

등 몇 가지를 산다. 튀김을 좋아하여 빙어튀김도 샀다.

섬진강에 떠 있는 나룻배 한 척이 가랑잎보다 더 가벼워 보인다. 물새

몇 마리가 서성이는 강가에는 이름 모를 물고기의 눈빛처럼 반짝거리는

하얀 모랫벌이 낙엽처럼 누워있다. 헤일수 없이 많은 사랑을 담고 흐

르는 저 강물! 그리움을 말하는가! 저 숨결 속으로 황홀하게 스며들고

 

싶구나!

하동읍과 순천의 갈림길에서 하동읍 쪽으로 가서 청학동으로 가려고 했

는데, 그만 순천 쪽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만의

일몰을 보려면 시간이 없기도 했다. 산골매실과 청학동을 꼭 보려고 했

는데 매화가 피는 내년 초봄에 다시 와 보기로 하고 차는 고속도로를

피해 산중으로 이어지는 왕복 2차선 길을 따라 신나게 달린다.

 

순천만의 갈대밭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끝없는 갈대밭 위를 까

맣게 덮어 날아들며 원무를 하는 수천 마리의 철새 떼가 황혼에 물들어

눈부시다. 갈대 사잇길을 지나 1km 산길을 올라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

본 장엄한 일몰은 지극히 그리운 이를 생각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나오 듯 그렇게 눈물이 흘렀다. 갯벌 위로 먼 산과 하늘이 보랏

빛으로 물들어 가는 만추의 정취는 하루의 일상을 겸허히 누이고 새로운

내일의 약속을 기약하는 듯 목이 메이도록 아름다워 눈물겨운 빛이다.

 

어둠에 묻혀버린 길을 재촉하여 마산으로 왔다. 새로 지은 근사한 곳에서

잠을 자게 되어 기분이 너무 좋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포항으로 나오니 점점이 작은 고깃배들이 가득 들어와 있다. 수면에는

물안개가 차올라 마주 보이는 작은 섬들은 전설 속의 세상인 듯 하다.

 

해안을 따라 진해에 와선 '진해해양공원'으로 갔다. 이곳은 군함전시관,

해전사체험관, 해양생물테마파크로 나뉘어저 있는데, 맨 처음 군함전시관

으로 갔다. 군함의 구조가 그렇게 복잡한 줄 몰랐다.

 

해안길을 따라 부산 쪽으로 오는데 바다 위의 작은 섬들이 부초처럼 떠

다닌다. 갈매기들이 손을 흔들 듯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많은 배들이 지

나다닌다. 비 내리는 수면 위로 조용히 흔들리는 감정의 물살에 내 마음

을 송두리째 담으며 나도 그들과 함께 하나의 풍경이 된다.

 

- 혜 강 - (2006.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