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산장의 밤은 너무나 고즈넉하여 밤에 잠잘 때 잠이 잘 깨인다.
풀벌레소리, 바람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등이 어우러져서 깊
은 잠이 아닌 잠을 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뇌파가 알파파와 흡
사하게 나타나는 렘수면 상태에선 잠을 잘 깬다.
밤 12시경에 잠이 들었는가 했는데 새벽 2시경에 잠을 깼다.
무슨 소리에 잠을 깼는지 모르지만 쉬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텔레비전을 켜서 영화 채널을 돌린다. '글루미 선데이'가 시작
되며 등장 인물이 소개되고 있다.
영화는 노래가 실제로 작곡되었던 1935년의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오랜 꿈이던 레스토랑을 경영하게 된 헝가리인 자보(조
아킴 크롤 분)와 그의 곁에 사랑스럽고 고혹적인 연인 일로나(에리
카 마로잔 분)가 함께 일하고 생활한다. 그때 한 피아니스트인 안
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 분)가 레스토랑에 일자리를 구하러 찾아
온다. 자보와 일로나는 안드라스를 고용한다. 일로나가 피아니스트
인 안드라스와 열애에 빠지자 셋은 평화로운 삼각관계를 공유한다.
일로나의 연인이었던 자보가 안드라스와 일로나가 밤을 새우고 나
오는 것을 목격하고는
"전부를 가질 수 없다면, 반만이라도 갖겠어..."
그런 후 이 셋은 아무 거리낌 없이 서로 사랑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
나간다. 매력적이고 순수한 일로나가 주인과 피아니스트 사이를 왔
다 갔다 하면서 하루는 이 남자와 하루는 저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모습은 조금도 추하지 않고 아름다워 보임은 왜일까? 서로 아주 사
랑하며 행복해 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통의 정서와 상식을 뛰어 넘는
다 할지라도 영화 속은 아름답기만 하다.
일로나의 생일을 위해 피아니스트가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을 만
들어 일노나에게 바친다. 일로나의 생일 선물로 자작 곡을 연주하는
안드라스, 그 곡은 그 날 레스토랑에 있던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연히 방문한 빈의 음반 관계자가 글루미 선데이의 제작을 제의해
온다. 음반은 크게 히트하게 되고 그와 더불어 레스토랑 역시 나날
이 번창한다.
그러나 너무도 슬픈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
하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안드라스, 죽음의 송가는 끝없이 사람들
을 자살로 몰고 가는 가운데 헝가리는 점점 전운에 휩싸이게 되고
영화가 지속되는 내내 이 곡이 피아노 반주로 전개된다.
전운의 기운이 감도는 이곳에 이들의 사랑은 일로나를 짝사랑했던
독일인 한스(벤 베커 분)가 나치 장교가 되어 나타나므로 오랜 후에
이 영화의 비밀스런 반전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결국 자신의 곡이 저주의 곡이라며 괴로워하던 안드라스는 자신이
고민하며 적은 글루미선데이의 가사를 일로나가 처음 부르던 날 한스
의 권총을 빼어들어 자살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보는 유태인이란
이유로 한스에 의해 가스실로 보내지고, 한스는 이를 알고 자보를
살리려 찾아간 일로나를 무참히 짓밟는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한다.
감독 롤프 슈벨은 닉 바로코의 원작소설인 '슬픈 일요일의 노래'와
이 노래에 얽힌 사연에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재창조된 전설적
인 글루미 선데이를 영화화했다.
"우울한 일요일/내가 흘려보낸 그림자들과 함께/내 마음은 모든
것을 끝내려 하네/곧 촛불과 기도가 다가올 거야/그러나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기를/나는 기쁘게 떠나간다네/죽음은 꿈이 아니리
/죽음 안에서 나는 당신에게 소홀하지 않데/내 영혼의 마지막 호
흡으로 당신을 축복하리"
1936년 파리의 콘서트홀에서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하던 단원들은 드
럼 연주자의 권총자살을 시작으로 거의 모든 단원들이 자살을 했으며,
레코드로 발매된 당시 8주만에 헝가리에서 이 노래를 듣고 187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글루미 선데이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이
창작된 영화이며, 발표된 지 8주만에 헝가리에서만 187명의 자살을
유도한 일명 '자살의 송가'다.
자살했던 사람은 가정주부, 회사원 등 다양한 계층이었지만 그들의
자살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한다. 죽기 며칠 전부터 '글루미
선데이' 음악을 들었고, 자살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글루미 선데이'
를 듣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1968년 1월7일, 이 음악을 작곡했던 레조 세레스 역시 부다
페스트의 한 빌딩에서 투신자살했다. 그는 "내 마음 속 모든 절망을
'글루미 선데이' 선율에 눈물처럼 쏟아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자살의 송가'를 작곡했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했던 그는, 이 음악을
작곡한 후 손가락이 굳어 자살할 당시엔 두 손가락밖에 사용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는데, 그때 레조의 방안에도 '글루미 선데이'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여러 가수들이 이 노래에 깃든 죽음을 예찬하
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음악은 인간의 감성을 지배한다고 한다. 작곡가의 마음 속 모든 절
망과 눈물과 상처와 외로움, 사랑까지 이 선율 속에 진한 향기로
피어나 가득 흐르기 때문인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 속으로 빨
려드는 것만 같았다.
- 혜 강 - (2007.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