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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 어떤 여승 *

by 조혜강 2007. 10. 22.

 

"보살님, 밖을 내다보세요. 상현달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스님의 약간 들뜬 전화 목소리에 창문 밖을 보니 구름 사이로 상현달이 정말

예쁘게 환히 웃고 있다.

산장 부근을 산책하고 있을 때, 근처 사찰에 계시는 스님을 만나 얘기를 하는

동안 정서가 비슷하여 얘기가 잘 통한 이후로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

이로 발전하여 왔다.

 

스님은 그 영혼이 물처럼 유려하여 푸르고 맑게 보인다. 그리고 신성하게 보

인다. 푸르고, 맑고 신성하게 보인다는 것은 생의 목적과 이상과 정신 그리고

영성 및 불성이 맑고 신성하다는 것이다. 얘기를 해 보면 바람 없는 가을날

물빛 같은 하늘을 아무런 아우성 없이 유유히 오가는 구름처럼 그 머무는 바

없음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무성한 수풀처럼 타오르며 장맛비처럼 퍼붓는 젊음의 열정과 사랑을 그 장엄

한 희색 승복으로 승화시키며 유리알처럼 푸르고 드맑은 가을 하늘을 보기 위

해 초롱한 별들을 얼마나 올려다 보았을까? 어느 하루도 온전한 휴일이 없는

스님의 생활, 그 수행의 과정을 경건한 마음으로 올려다 본다.

 

스님은 웃을 때 천진한 웃음을 함박 웃는다. 눈가에 웃을 때만 잡히는 주름이

몇 개 있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의 성벽은 물론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고

대상을 그 가슴 깊이 있는 그대로 포용한다는 뜻일 게다. 그녀의 웃음은 빛을

내는 보석처럼 은은하고 향기롭다. 산새가 요란스레 웃고 있는 숲길을 동행하

고 싶은 사람, 물처럼 구름처럼 담백하여 좋다. 산중불교가 아닌 지금은 대중

불교이니 스님 또한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속에서 호흡하고 살지만 그의 불성은

여늬 사람들보다 맑고 밝고 청아하기만 하다.

 

그녀 가슴의 빈자리에는 잡풀처럼 아무것이나 심지 않고, 항시 비어 있어 크

나큰 충만을 향한 기다림이 있다. 푸르고 안타까운 달서리 같은 감성과 오후의

햇살처럼 빛나는 이성을 고루 지녀 시냇물처럼 청아한 언어를 보내오기도 하

, 꽃잎처럼 불타는 언어를 보내오기도 한다. 그녀의 언어는 내 심연을 휘저

어 흔들리며 올라오는 그리움처럼 별빛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또한, 스님은 한 인간이 한 인간을 사랑하는 천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이

. 눈빛이 공허하지 않고 가슴에선 늘 따스한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을 사귐

에 있어 손익 계산표가 없는 사람, 그리고 산을 사랑하여 산 그림을 많이 그

리는 사람, 산은 그녀가 혼자서 사랑을 지속하는 영원한 인식작용의 목적이 되

는 객관적 사물처럼 보인다. 중생을 자비로 제도하고 그 큰 자비를 또 하나의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일, 그 자체가 그녀의 평생의 타고난 천직인 것처럼 보인

. 서서한 여명이 찾아오는 새벽 산길 길섶의 이슬을 밟고 서서 스님은 그 영

혼을 지속적으로 닦으며 씻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산처럼 태연하면서도 그림을 그릴 때의 입체적이고도 총체적인 안목과 분석적

이고 조직적인 탁월한 그녀의 사고, 직관의 정확성, 산을 구멍 낼 것처럼 쳐다

보며 산을 그려내는 그녀의 눈빛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정에 인색하지 않고,

말 한마디에도 정을 많이 담고 있다.

 

달밤을 배회하며 달과 노니는 사이에 초추의 서늘한 가을밤이 익어간다.

지금쯤 나는 어느 길 위에 서 있을까? 바다에 이르기 위해 어느 샛강을 흐르고

있을까? 몸의 나이로, 마음의 나이로 살다가 지금은 영혼의 나이로 살고 있는

듯하다. 영혼은 나이가 없다. 그래서 늙지 않는다고 한다. 매 순간 새롭게 피어

나는 꽃처럼.

 

이제 나의 소망은 스님처럼 좋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을 선택함에 까다롭지 않

,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물처럼 담백하고, 구름처럼 유유하고, 날로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싱그럽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머무

는 곳마다 찻잔의 온기처럼 따뜻한 사랑이 기다렸으면 좋겠다.

 

- 혜 강 _ (2007.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