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뜰21 * 주남저수지에서 * * 주남저수지에서 * 어릴 적 무지개 빛깔을 풀어 꽃구름 송이송이 키우던 꿈 초롱한 별빛 물굽이 넘실거리는 주남저수지에서 흔들리는 갈대꽃 따라 물속을 유영하던 유년의 뜰 눈 감아도 환히 열리는 미소 너의 품에 내 그리움과 아쉬움을 담으리라 내 연민한 삶의 길이여 님이여 나의 님이여 갈빛 햇살에 말리는 이 지독한 보고픔은 철새들의 날개를 키우고 은빛 못에 이슬 기운 이리도 서늘하여 새벽하늘은 물살처럼 맑아 보이는데 흰 별들은 정 안고 물속에 드니 끝없는 그리움만 호올로 아득하여라 - 혜 강 - 2020. 9. 11. 물안댁 물안댁은 나의 유년시절 이웃에 살던 분이시다. 점을 잘 보아 용하다는 평판이 났었고 한 때는 점 보러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에 접신이 와 점쟁이가 됐다고 한다. 가족계획이 없던 때라 생기는 데로 애들을 많이 낳던 때였는 데도 물안댁은 '영구'라는 아들 하나뿐이었다. 신 내림을 받아 강신무가 된 신령스런 몸이라 함부로 남자를 가까이 하면 몸이 불결해진다 하여 남편과도 담을 쌓고 사는 것을 동네 사람들은 거의 다 아는 사실이었는데 근동에까지 알려지게 된 것은 그분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날 때였다. 남편의 상여가 막 집을 나서려는 그때 상여 앞을 가로막고는 땅을 치며 통곡을 하면서 나온 말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X 달라할 때 못 준 것이 .. 2017. 2. 8. 따뜻한 선물 물품 구입을 하지 않았는데 택배가 왔다. 누가 보낸 무엇인지 궁금해 얼른 받아보니 국민은행 VIP ROOM 실장인 박진미 씨가 보낸 생일 선물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 보니 "생일 축하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당신이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생일 축하드립니 다." 하는 메시지가 적힌 예쁜 카드와 찹쌀, 팥 그리고 미역이 들어있었다. 어릴 적 생일날 어머니께서 커다란 밥그릇에 찹쌀밥을 고두로 꾹꾹 눌러 담고 육고기를 전혀 못 먹는 나를 위해 홍합, 조갯살 등 해물을 잔뜩 넣고 끓인 맛있는 미역국에 팔 길이만 한 조기생선 을 통째로 구워 한 상 가득 생일밥상을 차려주셨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따뜻해졌다. 휴일에 먼 거리를 달려 온 아이들과 외식으로 생일밥상을 받은 후라 진작 생일날은.. 2016. 12. 19. * 코스모스에게 * * 코스모스에게 무지갯빛 영롱한 꿈들이 바람 자락 쉬어가는 모서리마다 서성이고 있는 유년은 늙을 줄 모르고 부끄러이 손가락 걸던 무꽃 향기 같은 사랑은 간밤 꿈속에도 찾아와 눈처럼 하얀 언어로 소복소복 쌓였다 그림자도 없이 찾아드는 시절 돌아보면 아득하여 명주실보다 더 가느다란 목으로 참아 내리는데 여름비처럼 들뜬 그리움들은 이 계절의 가슴팍에 희고 붉은 얼굴로 피어나고 있구나 - 혜 강 - 2016. 10. 5. 아이고 배야! 저녁을 먹은 후 언니들의 설거지가 끝나면 식구들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안방에 쭉 둘러앉는다. 할머니, 아버지, 엄마, 오빠들, 언니들, 동생, 그리고 나. 할아버지께선 일찍 돌아가셨기에 내 기억엔 안 계신다. 하늘을 나는 새가 그의 양 날갯속에 새끼들을 그윽이 품 듯 아버지께서는 좌우를 쭉 들러보시곤 재미나는 옛 이야기 한 편을 내놓으신다. 많이 배우시고 입담 좋으신 아버지의 이야기는 나를 무수히 감동시켰으며 때론 한없 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아름다운 세상을 탐험하기도 했다. 어떤 땐 식구들이 음악회를 열어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때때로 아버지께서 퉁소를 부시는 날이면 그 호소하는 듯 애수적인 퉁소소리에 동네 처녀들이 문밖에서 숨을 죽이며 취해 넋이 나가기도 했었다. 한 시간정도 아버지의 얘기.. 2015. 11. 3. 박영규 선생님 음지에 드문드문 남아있는 잔설을 녹이며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교실 유리창을 통해 내리는 빗방울을 헤아리며 방금 정문을 나가신 선생님의 뒷모습에 하염없이 매달려 있었다. 오늘까지 대산 중학교에 입학응시원서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 날이다.중학교에 진 학할 다른 학생들은 벌써 다 지원서를 제출한 상태다. 좀 전에 내게 돈을 주시며 속성 증명사진을 찍고, 도장을 파오라 하셨던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들을 자습하라 고 말씀하신 후 내 응시원서를 들고 왕복 6km나 되는 길을 비를 맞으시며 대산 중 학교로 향해 걸어가셨다. 지금은 대산 중고등학교가 가술리에 있지만 그때는 적산가옥이 즐비한 상포리 주 천강 가에 중학교만이 그림처럼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을 때다. 얼마 전에 큰오빠 가족들을 모두 잃고, .. 2013. 10. 14. 병실에서 작은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무릎이 아파 20여 일간 고생을 하더니 통원치료를 하여도 효력이 없어 수술을 하기로 하였다. 병명이 '염증성 활악막염'으로 무릎 관절 부위에 염증이 생겨 통증이 심하였다. 수술을 하고 누워있는 작은언니를 보니 많은 생각이 가슴을 누른다.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건강하고, 일을 잘하고, 깔끔한 언니에 비해 나는 병치레가 잦고, 일을 못하고, 공부만 하면서 집안일은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동네어귀에 있는 우물을 길어다가 바가지까지 철철 넘치게 담아 놓고 장독대는 물론 화장실까지 깨끗이 청소를 하고는 학교로 가는 작은언니는 내 수발까지 들었었다. 저녁마다 교복바지에 물을 뿌려 요 밑에 깔고 누워 아침이면 칼날처럼 줄을 세워서 나를 입혀 보내고 교복은 물론 옷.. 2011. 12. 12. * 감나무 * * 감나무 * 유년의 마당귀에 감나무 한 그루 사계절을 많이 탔나 보다 물오른 가지에서 연둣빛 새싹이 부끄러이 돋아나던 연분홍 봄날 달아오른 햇볕 이고 이파리에 사연 묻은 언어들을 빼곡히 쏟아내던 초록의 여름날 감 사이로 올려다 본 내 노래보다 더 푸른 하늘 그 눈물 시렸던 붉은 가을날 식구.. 2011. 10. 24. 참새구이 겨울 날씨가 상당히 춥다.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건만 가슴에 엉기는 추위는 때론 온몸을 적셔 오환이 들게 한다. 가장 외롭고 가장 고독한 날이면 어김없이 달려가는 품안, 무조건적인 이해와 용서와 배려와 사랑이 무성했던 유년 시절 이것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하고 고된 삶을 살았을까 싶다. 무리지어 피어나는 들꽃처럼 소박하고 풍성했던 유년의 파스텔화 속에는 지금도 내 젖은 몸과 추운 마음을 말려 줄 축복처럼 따스한 날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어릴 적 병약했던 나를 위해 우리 오빠는 참새구이를 많이 해주셨다. 해거름 때 참새가 찾아드는 지붕 밑을 잘 봐 두었다가 밤이 되면 우리 오빠는 사다리에 올라가 손전등을 켜고 참새 집을 비추면 새는 눈이 부시어 꼼짝 못했다. 오빠는 손을 넣어 참.. 2011. 1. 18. * 코스모스에게 * * 코스모스에게 * 무지갯빛 영롱한 꿈들이 바람 자락 쉬어가는 모서리마다 서성이고 있는 유년은 늙을 줄 모르고 부끄러이 손가락 걸던 무꽃 향기 같은 풋풋한 우정은 간밤 꿈속에도 찾아와 눈처럼 하얀 언어로 소복소복 쌓였다 그림자도 없이 찾아드는 어린 시절 돌아보면 아득하여 명주실보다 더 가.. 2010. 9. 26. * 주남저수지에 가면 * * 주남저수지에 가면 * 어릴 적 무지개 빛깔을 풀어 꽃구름 송이송이 키우던 꿈 초롱한 별빛 물굽이 넘실거리는 주남저수지에서 흔들리는 갈대꽃 따라 물속을 유영하던 유년의 뜰 눈 감아도 환히 열리는 미소 너의 품에 내 그리움과 아쉬움을 담으리라 내 연민한 삶의 길이여 님이여 내 님이여 갈빛 햇살에 말리는 이 지독한 보고픔은 철새들의 날개를 키우고 은빛 못에 이슬 기운 이리도 서늘하여 새벽하늘은 물살처럼 맑아 보이는데 흰 별들은 정 안고 물속에 드니 끝없는 그리움만 호올로 아득하여라 - 혜 강 - 2010. 9. 6. 영원한 로망 하모니카 소리에 놀라 깬 유년의 뜰 안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낙동강 유역 김해평야 그 초록 들판을 참새처럼 날아다니며 풀꽃을 따던 쬐끄 만 아이! 그 작은 가슴에 꼭꼭 묻어두었던 추억의 그림들은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우리 할머니와 아버지와 엄마, 오빠들과 언니들 그리고 내 동생이 함께 살던 곳 샛노란 감꽃이 마당 가득 떨어지고 장독대 둘레 둘레 줄장미가 피어나고 울담 밑에 봉숭아꽃 아른거리는 집 살면서 더러는 추울 때 살갗 언 발을 아랫목에 묻듯 잠깐씩 넘나들던 곳 그곳은 영원히 늙지 않는 봄처럼 자운영 붉은 꽃이 가득 했다. 주남저수지 가는 도중 어릴 때 살던 동네에 들어섰다. 공장이 많이 들어서고, 전원주택도 많이 들어선 너무나도 달라진 마을 풍경에 한참 이리저리 헤매다 우리 .. 2010. 1. 12.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