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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여행의 멋을 찾아서

by 조혜강 2012. 10. 8.

-바다 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는 아름다운 남해, 창선대교를 건너 남해안을

달린다. 아침에 울산을 떠나 H선생과 함께 가을여행을 떠나고 보니 온 세상을 품에 안은

듯 설레고 풍요롭다.

 

처음으로 들린 곳은 '독일마을'이다. 남해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배기에 조성된 이 마을은

젊은 시절 먼 나라 독일에서 지냈던 광부와 간호사들이 사는 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주로

독일의 건축양식으로 집 이름도 괴테하우스, 하이네하우스, 로렐라이 등 독일의 유명한

인물이나 지명을 땄다.

 

독일마을 끝자락에는 남해에서 만나는 작은 행복의 '원예예술촌'이 나오는데 원예전문가

를 중심으로 20명의 원예인(한국 손바닥정원 연구회회원)들이 집과 정원을 개인별 작품으

로 이룬 마을로 탤런트 박원숙, 맹호림 씨 등의 집이 있으며 9개의 공공정원과 산책로 전망

테크 옥외공연장 등이 있다.

 

저녁 무렵에 20년 지기 스님이 계시는 전남 영광군의 약사선원으로 가서 스님이 차려주

시는 따끈한 된장찌개와 멸치볶음 그리고 갓 딴 호박잎을 찐 쌈이 유달리 맛있었던 저녁

을 먹은 후, 등불이 켜진 소박한 스님의 다실에서 나무 찻잔에 백 가지 식물로 효소를 만

든 차, '백약차'의 그 맛과 향기를 음미하며 가을밤을 노래하는 마당가의 귀뚜라미에게도

마음을 연다.

 

이튿날은 그곳에서 채 십 분이 걸리지 않는 백제불교 초전가람지 '불갑사'엘 갔다. 도롯가

좌우에는 꽃무릇이 줄을 서서 어서 오라 반갑다는 눈짓을 보낸다. 사진 상으로만 보았던

불갑사 꽃무룻은 절정의 시대를 맞고 있었다. 푸른 나무 아래에서 붉은 웃음을 날리며 내

가슴을 향해, 내 가슴에 걸린 등불을 항해 뜨겁게 달려와 내 붉은 심장을 마구 두드리는 건

꽃이 아니라 불이다. 푸른 나무와 붉은 꽃이 만들어 내는 단청(丹靑)은 볼수록 찬란하다.

보이는 것은 붉고 푸른 단청뿐이다. 호숫가를 걸어가니 옥수처럼 맑은 계곡이 나온다.

흰 물살과 붉은 꽃과 푸른 나무! 이보다 더 어울리는 자연의 화음이 있을까 싶다.

 

오후 340분경 향화도에서 배를 타고 낙월도로 갔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 어느 선비가

풍랑을 대피하기 위하여 잠시 들렀다가 섬 이름을 몰라 달이 지는 쪽에 위치하였다 하여

진월(진다리)이라 하였으나, 그 후 달이 떨어지는 모습과 같다하여 낙월이라 불렀으며

위쪽에 있다하여 상낙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상낙월도와 하낙월도의 두 섬은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다. 주민들의 얘기로는 예전엔 새우

잡이로 번성했던 곳이라 한다. 황토로 조성된 상낙월도 둘레길을 걷다 보니 하루 종일 온

몸이 빠알갛게 달아오른 해님이 서쪽 수평선 너머로 빠져들기 위해 수평선 가까이 내려오는

게 아닌가! 일몰의 장엄하고 웅장함, 세상을 선홍 핏빛으로 화려하게 물들이며 하루의 모든

시름과 아픔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안식의 밤으로 사라져가는 일몰의 장관을 넋이 나가도록

바라본다.

 

해가 지자 눈 돌린 산등성이 소나무 위로 하얀 초나흘 초승달이 떴다. 낙월도에 왔으니 낙월

을 봐야지. 달이 바다에 지는 모습을 보려고 저녁을 먹고 바닷가에 나왔다. 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초롱초롱 빼곡히 떴다. 어릴 적 목 아프게 쳐다보았던 고향의 그 하늘처럼.

 

달은 하낙월도 산 위에 있다. 차를 타고 하낙월도 쪽으로 갔는데 산 뒤로는 길이 없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산 뒤로 숨어버리는 달을 보며 마음으로 바다에 떨어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상낙월도

처럼 하낙월도 둘레길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 후에 들으니 하낙월도 언덕으로 올라가면 지는 달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낯선 곳인데다 밤이라 많이 아쉬웠다. 달이 바다에 떨어지는 것은 한 번도 본

일이 없었기에 더욱 그렇다.

 

아침 바다 일출의 장관, 그 찬란함은 내 심장을 또 뛰게 했다. 우리 집 베란다를 통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여행지에서의 감정은 또 다르다. 일출과 일몰과 낙월을 모두 볼 수 있는

낙월도를 떠나 향화도로 오는 뱃길에서 어느 선객이 법성포의 조기구이가 유명하다는 얘길 듣고

그곳에 찾아갔더니 한 상 잘 차려진 호화로운 상 위엔 내가 좋아하는 생선과 해물이 가득하고 맛도

좋았다. 부근을 지나칠 때 언제든 찾고 싶은 곳이다.

 

밤길을 달려 울산으로 오면서 이번 여행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니 918일부터 20일까지

23일의 일정치곤 참 푸짐하고 소박하면서도 멋있는 외출이었다. 머지 않는 날 단풍여행을

함께 하자는 손가락을 걸어도 보며 함께 한 H선생께 깊은 감사를 보낸다.

 

- 혜 강 - (2012.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