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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사례

선 하나로 잇는 사랑

by 조혜강 2013. 12. 10.

울산 생명의전화가 개소된 지 21년의 세월이 흘렀다. 생각하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세월이 지나갔는가 싶다. 이 글을 쓰려니 그간의 일들이

마치 추억처럼 새록새록 피어올라 가슴이 뜨거워진다.

 

상담원 교육을 마치고 첫 전화를 받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몹시

당황스러웠던 일.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그 문제 속에 갇혀

있는 내담자들을 만나는 동안 나만 외롭고, 힘들고, 특별하게만 여겨졌던 내

삶이 그래도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음을. 내담자의 문제를 듣고 있는

동안 내 역동이 일어나 오히려 내가 더 분노하며 치를 떨었던 역전이 현상,

살면서 힘들게 겪었던 일들이 마치 상담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인 듯 내 경험적

산지식을 많이 활용한 일 등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 자신 하나 추스를 수 없을 만큼 허기진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 이상으로 정신적 지주였고 나를 많이 사랑했던 큰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정신이 거의 오락가락 하였다.

삶이 버거워 살아가는 것인지 살아내는 것인지조차 인지가 힘들었던 나날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명제(命題)만이 나를 압박하던 날들에 나는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과 사랑과 수용과 지지를 외면한 채 많은 일 속에 자신을 가두면

서 힘들게 지냈다.

 

그러던 20년 전 2월이었다. 그 당시 대개 그렇듯 상담의 불모지인 울산에 생명의

전화가 태어났다. 문제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마는 세상에는 참 많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내 삶은 눈에 보이지만 남의 삶은 신비의 베일에

가려 보이지 않으니 나만 힘들고 다른 사람들의 삶은 퍽도 평화롭게 보일 뿐이라

는 것을 자각하게 되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 하나로 잇는 사랑!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간의 정서적 교감이 일어나야 한다.

20년 동안 많은 내담자들을 만났는데, 나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들의 문제와 아픔을 경청하고, 공감하고, 수용하고, 때로는 함께 울고, 때론

기뻐하기도 하며 온전히 나를 주려 애썼던 그 시간들은 나를 성장시키는 에너지가

되었다. 피폐된 영혼이 생기를 얻고, 얼어붙었던 감정들이 녹기 시작했다. 사는

문제 외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아름다운 대상들이 서서한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오기 시작했다.

 

문학의 꿈도 다시 소생되어 나래를 펴며 허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깊은 샘소에 갇혀버린 어휘들이 굳은 땅을 힘겹게 뚫고 나오듯 하나 둘 발아되기

시작하고, 그것들은 햇볕을 받아 숨을 쉬고, 수분을 빨아들이며 성장을 향해 몸부림

을 치기 시작했다.

 

사는 동안 나를 괴롭혔던 정신적 외상은 나를 성장시키는 영양제였다는 걸. 나의

교만과 부족함을 가르쳐 겸허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는 걸.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없다. 내가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담자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며,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정신적

성장'으로의 지향점을 찾은 셈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 위에서 생명의전화를 통해 얻은 나의 정신적 재생인 성장으로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좁은 자아를 버리고 넓고 깊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때론 버거울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나를

따라다니는 근원적인 외로움과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자존감을 높이고, 진심과 일치성으로 나를 수용

하고, 지지하며 본격적으로 나를 사랑해야 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제대로 알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명의전화는 호주의 시드니 중앙감리교회의 알렌 워커(Alan Walker) 목사에 의해

구상되어 1963316일 토요일 오후 5시 역사적인 개통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691일 정오에 서울에서 상담전화가 개통되었고

울산 생명의전화는 19922월에 개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담전화는 (052) 267-9191(구원구원)이며 각 국()9191번은 한국내의 모든 지역

센터에서 사용하는 상담전화로 내담자가 갖고 있는 문제로부터 '구원'을 의미한다.

 

- 혜 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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