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7일 난생 처음으로 해남 미황사, 강진 무위사, 백련사 등 삼사순례를
떠나본다.춥지도 별로 덥지도 않은 이 좋은 계절에 순례를 떠난다기에 나도 진
정한 나를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나보기로 했다. 내가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내게 보여주니 판단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자.
6시 30분에 천불사 정류장을 출발한 차는 스님과 불제자들을 가득 싣고 익어가
는 가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차안을 가득 매운 분들은 거의 스님과 불제자
들이었다. 그렇지 않은 나, 초보 순례자는 다소 낯설었지만 이런 분위기에 마음
껏 취해보는 것도 하루의 큰 복이려니 하다.
양산 1대, 부산 2대, 울산 1대, 총 4대의 관광버스에 지역 불자들을 태우고 처음
으로 찾아간 곳은 전남 해남에 있는 미황사(美黃寺)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
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로 1692년(숙종 18)에 세운 사적비에 의하면 749년(경덕
왕 8)에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창건했다고 한다
절 초입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다르다. 빽빽한 숲을 이리저리 헤치며 달리던 차가
주차장에 당도하고 불자들이 우루루 쏟아진다.
달마산 기슭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우리 나라 육지 가장 남쪽에 있는 절이다.
돌로 단단히 쌓은 담벼락이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데, 담을 경계로 세상은 양 극
을 이루고 담 밖은 세속이다.
자하루 누각을 거쳐 2단, 3단의 고고하고 단아한 돌계단을 오르며 방금 지나온
세상을 되돌아 본다.
화려한 단청도, 주렴도 없어 더욱 고풍스런 멋이 풍기는 대웅보전 처마에는 하늘
을 날고 싶은 풍경이 바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날아갈듯한 지붕 너머로 높이 바라
다 보이는 삼황(三黃)의 달마산은 불상과 바위, 석양빛이 조화를 이룬 수려하고,
우아하고, 중후한 남성미를 마음껏 풍겨 반할지경이다.
산능선부에는 풍화작용에 매우 강한 규암층이 길게 노출되면서 발달한 흰색의
수직 암봉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이와 조화를 잘 이룬 미황사는 풍경과
정취가 뛰어난 절경의 산사로 순례자의 가슴은 두근두근 벅차다.
도착 즉시 공양간으로 가 정갈하게 차린 점심공양을 한다. 찹쌀과 콩을 섞은
찰진 밥에 청포묵, 호박찜, 산나물 등으로 참 맛있다.
화려한 단청이 없어 고풍스럽고, 오히려 화려함이 돋보이는 듯한 대웅보전은
문살의 문양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947호.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단층 팔작지붕이다.
대웅보전 옆에는 응진당이 있는데 그 앞에서 멀리 바다가 보이니 한 번 보라고
스님이 이르신다. 울산에 살면서 베란다 창 밖으로 눈만 돌리면 바다가 보이지만
응진당에서 보이는 바다의 모습은 어떠할까 벅찬 기대감으로 쳐다보니 운무가 방해를
하고 있어 약간 섭섭한 마음이었는데 응진당(應眞堂) 네 기둥의 주련이 번쩍 뜨인다.
晝現星月夜開日 주현성월야개일
夏見氷雪冬見虹 하견빙설동견홍
眼聽鼻觀耳能語 안청비관이능어
無盡藏中色是空 무진장중색시공
대낮에 별과 달을 밤에 해를 뜨게 하고
여름에 얼음과 눈 겨울 무지개 보게 하며
눈으로 듣고 코로 보며 귀로 능히 말하시고
무진장한 공덕 속에 색이 공이라.
이 게송은 아라한 정근(精勤) 중 아라한을 찬탄하는 탄백(嘆白)에 등장하
는 게송이다.
대낮에 별과 달을 보게 하고 캄캄한 밤에 해를 보게도 하며,
여름에 얼음과 눈을 겨울에 무지개를 보게 하는 것은 도무지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이와 같은 일들은 우리의 사념체계를 넘어선
아라한들의 신묘하고 불가사의한 신통이 자재함을 찬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눈으로 소리를 듣고 코로 사물을 보고, 귀로 능히 말한다 함은 육근
(六根)이 원통(圓通)하여 상식을 초월해 있다고 한다.
육신통이란 자유로이 원하는 곳에 나타날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
미래를 예지하거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인 천안통(天眼通),
보통 귀로는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식별하는 능력인 천이통(天耳通),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아는 능력인 타심통(他心通),
전생의 일을 자유자재로 아는 능력인 숙명통(宿命通),
번뇌를 멸하여 미혹된 삶과 윤회에서 벗어나는 지혜인 누진통(漏盡通)을 말한다.
그런데 이 누진통은 오로지 부처님과 아라한에게만 있는 능력으로 외도(外道)나
선인(仙人)들은 오신통(五神通)을 갖출 수 있으나 누진통을 갖추지 못한다.
이 육신통 가운데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을 특히 삼명(三明)이라 한다.
이는 천안통과 숙명통이 각각 미래와 과거의 고(苦)를 아는 능력이고,
누진통은 고의 원인인 번뇌를 단멸하는 지혜라는 점에서 깨달음의 지혜(明)라
하여 삼명(三明)이라 하는 것이다.
이런 삼명육통(三明六通)을 갖추었기에, 대낮에 별과 달을 보게 하고 캄캄한
밤에 해를 보게도 하며, 여름에 얼음과 눈을 겨울에 무지개를 보게 하는 것이다.
도무지 상식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 이와 같은 일들은 우리의 사념체계를 넘어선
아라한들의 신묘하고 불가사의한 신통이 자재함을 찬탄한 것이다.
또한 눈으로 소리를 듣고 코로 사물을 보고, 귀로 능히 말한다 함은 육근(六根)이
원통(圓通)하여 상식을 초월해 있다.
이와 같이 무진장한 공덕을 갖추고 있으면서 자재로이 소요하며 제법이 공한 이치를
관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출처 : 향기로운 불교 카페)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위엔 석양빛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두고 오기에 마음이 이럴까?
채운 듯, 비운 듯,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이여, 창밖은 온통 검은 장막이다.
- 혜 강 - (2014.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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