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작품은 이건창(李建昌) 작 인생종언(人生終焉)의 章으로 원제목은
<고령탄(高靈歎)>이다. 1886년(고종 23)에 지은 한시로서 5언 100구의 장
편 고시이며, 작자의 문집 <명미당집 (明美堂集)> 권 4에 실려 있다. 제목
밑의 주에 그의 동생이 악부(樂府) 한 편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여 이 시를
지어 동생에게 보여주었다고 창작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 한시를 혜강이 20년 전에 서예에 입문했을 때 행초서체로 쓴 졸작인 8폭
병풍으로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매화지를 사용하여 별로 변색되지 않고 비
교적 깨끗한 편이며, 혜강의 서예 작품 중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
<고령탄〉은 세조에 의해 고령군(高靈君)에 봉해졌던 신숙주(申叔舟)가 자
신의 과거에 대한 후회와 한(恨)을 스스로 탄식하도록 구성한 작품이다. 이
시는 "인생이 결국 여기서 그치는구나(人生會止此)."라는 자탄사로 시작하
여 몇 차례 내용 전환마다 이 구절을 반복하면서 전개 된다.
제1∼14구에서는 사족으로 벼슬하여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신숙주의 과
거를 밝히고 있다. 제15∼24구에서는 부귀영화를 누리던 신숙주가 갑자기
병이 들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신숙주는 왕의 권능으로도 자신의 병을
소생시키지 못함을 말한다. 죽음 앞에서 무기력해진 신숙주의 모습이 그리
고 있다.
제25∼30구에서는 신숙주가 자신의 59년간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자인하는
대목으로 과거 일을 반성하는 도입부이다. 제31∼62구는 20∼40대에 이르
는 기간 동안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집현전에서 보냈던 시절을 회고한 대목
이다.
제63∼86구에서 신숙주는 세종이 자신에게 단종의 보위를 부탁하였던 일을
상기한다. 그러한 부탁을 저버리고 세조의 왕위찬탈 음모에 가담하여, 옛 집
현전 동료였던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하위지(河緯地), 유성원(柳
誠源), 이개(李塏) 등을 죽게 하고, 홀로 수십년 동안 부귀를 누렸음을 고백
한 내용이다.
제87∼100구의 전반부에서 신숙주는 잘못된 자신의 과거 때문에 자신의 수
명과 부귀가 59년으로 마감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죽은 뒤에 세종과 집
현전 동료들을 어떻게 대할 수 있겠는가를 괴로워한다. 후반부에서는 이와
같은 자신의 일생을 거울삼아 세상에서 신하 노릇하는 자들이 경각심을 가지
도록 촉구하고 있다.
<고령탄>은 역사 속의 한 인물인 신숙주를 등장시켜 스스로 자기를 비판하고
반성하도록 유도한 작품이다. 그러나 신숙주의 목소리는 단순히 과거를 향하
여 울리는 것이 아니다. 작자 이건창은 신숙주를 통하여 당대 현실 속에서 살
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비판과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구한말 조선왕조의 붕괴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고령탄>은 우국(憂國)의 정
신을 작품의 내면에 내재하고 있다. 이 시의 저변에는 현실의 문제에 뛰어들
지 못하고 연약한 붓끝에 의지하여 전환기의 모순을 해결하려 노력하였던 고
뇌에 찬 지식인의 모습이 보인다.
이건창은 1853년 계축년에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봉조(鳳朝)
이다. 그는 만 13세가 되는 고종 3년, 1866년 별시에서 병과 3등으로 입격하여
조선시대 문과 합격자 15,151명 가운데 최연소 합격의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어려 19세 때인 1870년에야 홍문관직에 나아갔다. 187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뽑혀 청나라에 가서 청의 문장가인 황각(黃珏), 장가양(張
家), 서보(徐) 등과 교유했으며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조선 말기의 문
신 대문장가로 가학(家學)을 이어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했으며, 조선시대 당쟁
연구에 필요한 〈당의통략 (黨議通略)>을 지었다.
'墨香에 담은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보(杜甫)의 추흥(秋興) (0) | 2013.11.11 |
---|---|
* 묵향에 젖어 * (0) | 2009.03.23 |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 (0) | 2008.04.01 |
기미독립선언서 (0) | 2008.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