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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通過祭儀

by 조혜강 2003. 1. 5.

* 通過祭儀 *

 

산장에 갔다.

저녁을 먹고 여늬때처럼 뒷산으로 올라갔다

무덤가에 정갈하게 자라 다듬이질한

누런 잔디밭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본다.

우거진 소나무, 도래솔이 병풍인양 둘러서 있다.

 

뼛속 깊이 들어와 온몸을 바르는 갈색빛과

소나무 푸른 빛의 합성으로

마음과 몸이 어질어질하다.

밀대방석보다 더 고운 잔디 위에

발목을 덮는 가랑잎들이 누워있다.

그 위에 나도 벌렁 드러눕는다.

 

저녁 하늘엔 열이틀 상현달이 낮달로 떠 있다가

어둠에 젖어 점점 생명의 빛으로 살아나며

말갛게 미소 짖는다.

 

-엉 하고 범종소리가 새털처럼 가볍게 날라온다.

금이 갔는지 약간 둔탁한 소리

 

푸른 어둠에 젖은 눈을 가만히 감아 본다.

어머니 품 속 같이 참 아늑하고 좋다.

까치 한 마리 까악까악 동무 하잔다.

 

지내놓고 보니 참 아슬아슬 하였던 赤信號의 사건들

설렘과 꿈으로 가슴 찼던 새로운 指標들이 있었지.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 어머니의 치마폭을 떠나던

국민학교의 입학식으로 시작된

삶의 航路를 열어주던 여러 通過祭儀...

초경을 치루던 날의 무서움

무조건 적인 부모님의 이해와 용서가 함께한

머리 싸매었던 학창시절

 

어설픈 사회의 초년생인 취업 첫날의 당황함,

햇살처럼 물보라처럼 고운 모습으로 찾아 온

첫사랑, 그 의미와 상실의 아픔

한 남자를 만나 자식이 태어나고

그로 인한 기쁨과 갈등과 환희의 회호리

 

큰오빠, 큰언니, 그리고 부모님과의 死別

그로 인한 감당할 수 없었던 슬픔

나를 지배해 버린 외로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통각의 늪

 

그 늪에서 헤어나려 다시 시작한 학문의 길은

비록 어렵고, 힘들고 고달팠지만

반전되어 살아나는 삶의 의미가

무성한 가지의 무량한 밀어들을 낳아

사회의 자원이 되려는 야무진 마음으로 산

내 행위와 실존의 自燈明

 

이 모두는 무엇이었던가?

아픔뿐이었던가?

죽음이었던가?

더 높은 기쁨을 향한 進路였던가?

더 높은 차원을 향한 삶의 약속이었던가?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전환지대에서

끊임없이 明滅하는 自身의 모습이 상현달로 어린다.

 

한기를 느낀다.

달빛이 제법 빛을 발한다.

어둑어둑 어둠이 걸어온다.

세상은 달빛 하나로써도 여실히

건재한 모습을 드러내려 한다.

달빛보다 한 걸음 앞선

따뜻한 불길이 가슴팍을 지핀다.

내 마음의 등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