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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 휠덜린, 그를 그리며 *

by 조혜강 2006. 5. 2.

안톤 슈나크의 수필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는 '휠덜린의 시' 가 나옵니다.

휠덜린의 시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슬픔을 느끼게 했던 그 시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독일 시문학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대문호 정신적 박명(薄明) 속에서 후반 40여 년의

생애를 탑 속에서 보내야만 했던 비극의 주인공 독일의 서정시인이자 소설가인

'프리드리히 휠덜린'의 생애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었습니다. 튀빙겐 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성직자의 길을 가야 했던 휠덜린이 사제 서품을 받지 않고 성직을

포기하고 당대 최고의 시인 '실러'의 소개로 가정교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의 나이 26세 때였습니다. 두 번째 가정교사로 들어간 곳은 프랑크푸르트의 부유한

은행가 '야콥 곤타르트'의 집이었습니다. 그의 운명은 이 집에 들어간 첫날 뒤바뀌게 됩니다.

휠덜린보다 한 살 많은 '주제테' 부인은 그때 결혼 10년째로 이미 네 아이의 어머니였음에도

젊음과 미모를 간직하고 있었고 휠덜린은 부인의 아름다움에 첫눈에 반해버렸습니다. 부인은

그 시대의 유명한 조각가 '온마하느'흉상을 만들 정도로 대단한 미인이었으며 게다가 신비스러운

우아함, 예의 바른 행동, 타고난 소박함 등 매력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휠덜린은 날이 갈수 록 주제테 부인에게 빠져들어 뜨거운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한집에서 매일 사모하는 부인을 본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휠덜린의 활화산과도 같은 연정을 부인은 곧바로 눈치채게 되었고,

우락부락한 남편과 젊고 미남인 시인 사이에서 주제테 부인은 휠덜린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녀도 그의 순수한 심성과 문학적 열정을 알고는 경애하였고, 두 사람의 사랑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휠덜린은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부인과의 관계를 "이 비참한 시대에 나눈

영원하고 성스러운 우정"이라고 했고, 어느 날 부인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휠덜린에게 앞으로는 남들 

앞에서 자신을 다정하게 불러선 안 되며 뚫어지게 쳐다봐서도 안 되고 손을 잡는 것도 절대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의 가슴 졸이는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는 법 그들의 행복은 2년 반을 넘기고는 끝나고 맙니다.

두 사람의 소문은 온 도시로 퍼졌고 결국, 남편도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휠덜린에게 모욕을 주고

집에 서 쫓아냈습니다. 아주 예민한 성격의 휠덜린은 프랑크푸르트를 떠나게 된 이후 신경 쇠약이 심해지고,

2년 정도 부인과 은밀히 편지를 주고받지만, 그것은 고통을 가중할 뿐이었습니다. 부인을 생각하며 미칠

듯한 심정으로 쓴 시는 독일 문학의 주옥편이 됩니다.

 

그가 주제테 부인과 결별 이후 홈부르크에 사는 싱클레어에게 가서 그곳의 생활을 그의 <비가, 디오티마에

대한 메논의 비탄 >에서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나는 매일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늘 무엇인가 찾는다.

이미 오래전에 이 땅의 모든 길을 그들(짐승)에게 물었다.

저 위 차가운 산정, 또 모든 그늘을 찾아간다.

샘물도. 내 마음은 이리저리 방황한다.

고요를 찾으며. 화살 맞은 야수는 숲속으로 도피한다."

 

대표작인 '빵과 포도주'에서 시인은

 

"이 궁핍한 시대에 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지만 그들은 마치 거룩한 밤에 이 땅에서 저 땅으로

달려간 주신(酒神)의 성스러운 사제 같다고 당신은 말하는구려"

 

라고 읊으며 오열하였다고 합니다. 휠덜린은 주제테 부인과 헤어진 지 4년 뒤에 친구의 편지를 통해 부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버립니다.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 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마구 질러 대며 발광했습니다. 그런 날들은 계속 이어져 36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무려 36년을 병원에서 지내다가

죽었습니다. 불꽃처럼 피어올랐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 이 시인의 묘비에 아로새겨진 '운명(Das Schicksal)'

이란 시의 한 구절은 우리의 가슴을 칩니다.

 

"폭풍 중 가장 성스런 폭풍 가운데

나의 감옥의 벽 허물어지거라.

하여 보다 찬란하고 자유롭게 내 영혼 미지의 나라로 물결쳐 가라!"

 

시인의 영혼에서 불꽃처럼 휘몰아쳤던 문학에 대한 강한 열정과 자유에 대한 숭고한 의지가 선연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 혜 강 - (2006.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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