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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거가대교를 달리며

by 조혜강 2011. 3. 21.

산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길을 간다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는 길!

그리고 그 길은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도, 바다에도, 마음속에도, 추억 속에도 있다.

 

바다는 자연의 섭리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없지만, 길은 사람의 것이어서 섬에서 섬으로, 마을에서 마을

사이로 또한 마을에서 섬으로 연결되어 섬에 갔어도 마을로

되돌아온다. 길은 그 길을 오가는 사람의 소유인 것이다.

 

3월의 섬들은 겨우내 닫혔던 적막을 거두며 꽃처럼 피어나는 듯하다.

저 멀리 까마득한 수평선이 보이는 가없이 넓은 동해에 비해

남해는 손 뻗으면 닿을 듯한 섬들 사이로 옥빛 천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그림처럼 점점이 떠있는 돛단배들.

 

달리는 자동차 소리에도 바닷새들은 놀라지 않고 유유히 날개를 저며

공중을 선회하다 이내 바닷속으로 유영한다.

 

며칠 전 부산 사상터미널에서 고현 행 버스를 탔다.

지난 20101214일 개통된 거가대교를 보기 위해서다.

거가대교(巨加大橋)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가동에서 가덕도를 거쳐 거제시

장목면을 잇는 다리이다. 20101214일에 개통되었으며,

총길이 3.5km2개의 사장교와 3.7km의 침매터널, 1km의 육상터널로 이루어져

총 길이는 8.2km에 달한다.

 

거가대로 개통으로 부산~거제(부산 사상시외버스터미널~거제 고현 터미널) 간 통행

거리는 기존 140에서 60, 통행시간은 기존 130분에서 50분으로 단축되었다.

가덕도 쪽에서 거가대로를 이용해 거제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최고

깊이 48m의 바닷속을 통과하는 가덕해저터널을 지나야 한다.

 

가덕도와 중죽도를 잇는 3.7의 왕복 4차로 터널로 세계 최대 길이와

세계 최저 깊이의 침매터널이다. 침매터널이란 땅 위에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터널 블록을 부력을 이용해 바다에 띄우고 이를 수압 차이를 이용해 바다 밑에

설치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해저터널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해저터널 안에 들어서면 바닷속에 들어선 기분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일반 터널과 별 차이가 없었다.

깊은 바닷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해저 41m, 해저 48m란 표시판을 보고서 바닷속 깊이 들어와 있구나 하는 생각과

머리 위론 배들이 지나다니고, 물고기들이 헤엄을 칠 거라는 환상적인 풍경에

재미가 쏠쏠했다.

 

고현까지는 왕복 2시간이 걸렸었는데 창문이 넓은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하루를 얼마나 기분 좋게 하였는지.

오면가면 차창으로 펼쳐지는

바다를, 섬들을, 어선들을, 갈매기들을

그리로 장엄한 위용을 자랑하는 거가대교를 바라보며

혼자 세상과 만나 함께 세상이 되는 이 멋진 기분!

나는 놀라운 탄성을 누를 길이 없었다.

보이는 대상과 많은 대화를 마음으로 주고받은 참 좋은 날이었다.

 

지금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저녁이면 새하얀 박꽃이 지붕 가득 피어나는 초가지붕과

세상처럼 넓게 보였던 벌판과 긴 논둑길, 그 길에는 잔디가 새파랗고

쑥과 들나물이 자라고 붉은 자운영 꽃들이 만발했었지.

 

낙동강 유역의 김해평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저 멀리 보였던 산과 보이지 않았던 바다는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금 사는 집은 거실 창밖으로 눈만 돌려도 금방 바다가 거실 가득 들어온다.

아침마다 수평선 위로 힘차게 비상하는 아침 해를 볼 수 있고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끝에 천천히 일어서는 구름 몇 점, 뱃전에 물살이

흰 옥인 양 부서지곤 하는 바다가 언제나 좋다.

아마도 유년의 동경이 전이되어 그런 것일까?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남해는 맑은 물방울이 튕겨 뚝뚝

떨어질 듯 청결하게 보였고, 그 위에 수없이 떠 있는 고기잡이배들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수려하면서도 아름답게 펼쳐졌다.

물속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듯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니는 모습도 보이는 듯했다.

 

무언지 모를, 누군지도 모를 그리움. 그것이 아직도 남아있는 내 삶은

생기와 윤기와 의미가 있다.

 

거가대교를 오가면서 바라본 세상, 그 모두가 이 작은 가슴으로 뛰어들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다간 그것들은 또 다른 세상으로 승화되어 바다 위로 둥둥 떠다녔다.

그날따라 유난스레 윤기 어린 바다를 보면서 가장 아름다운 몇 줄의 글을 쓰고 싶은데

내 부족한 어휘력이 아쉽기만 하다.

 

오고 가는 길 위에서의 만남건조한 내 일상을 촉촉이 적셔 줄 하루 동안의 만남

때로는 단조롭고, 밋밋하고, 싱거운 일상을 탈출하여 새로운 세상과 만남은

내 영혼의 커다란 구원이며 감격이 아닐 수 없다.

가까운 시일 내 또 다른 만남을 나에게 주선해야겠다.

- 혜 강 - (2011,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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