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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고운 봄길 위에서

by 조혜강 2011. 4. 4.

따뜻한 봄날이다. 도처에 봄꽃 피어나는 소리에 저고리 앞섶이 달싹거려

견딜 수 없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왕암공원으로 마실을 나섰다.

며칠 전에 새로 산 트랙스타 등산화를 처음으로 신고 챙모자를 썼다.

 

햇살 받은 일산바다는 창포 빛으로 손을 뻗으면 금방 물이 들 것 같다.

모랫벌에 도장처럼 찍은 발자국들은 밀려드는 물살로 이내 다림질되고.

해안을 십여 분 걸으면 대왕암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세어보니 237개이다. 단숨에 올라간다.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팔딱팔딱 뛰어오른다. 숨차다.

해송이 우거진 공원, 붉은 동백꽃이 입구에서 먼저 반긴다.

하얀 목련화, 노란 개나리꽃도 줄을 섰고 벚꽃도 꽃필 준비를 서두른다.

길섶엔 야생화들이 즐비하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수선화가 노랗게 피어있다.

 

우아, 세상에 이런 일이

개나리 나무에 동백꽃이 피었네.

떨어진 동백꽃을 주워 뾰족한 개나리 가지 끝에 꽂으니

금방 개나리 나무에 동백꽃이 핀다. 재미있다.

 

대왕암공원의 송림을 헤치며 깊숙이 들어가면 울기등대가 있다.

문무대왕비 호국영령의 전설이 담겨져 있으며, 조선시대 말을 먹이던

목장이었던 이곳, 울산의 끝에 등대가 건립된 것은 1905220일이

란다. 19042월 발발한 러일전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일본은 해상권

장악을 위하여 급하게 나무로 만든 등간을 설치운영 하였고, 1905

9월 전쟁이 종료되자 한국정부로 인도하였다고 한다.

 

대왕암공원의 본래 이름은 울기공원인데 대왕암공원으로 명칭이 바뀐

것은 2004년이다. 울기(蔚埼)는 울산의 끝을 뜻한다.

 

공원 내에 남아 있는 울기등대는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106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새로운 신 등대에게 그 본연의 역할을 내주었으며 4D 입체

영화관과 선박 조종체험관으로의 기능을 하고 있다.

공원은 약 28만 평으로 굉장히 넓다.

 

이곳은 문무대왕비의 전설 외에도 해송림으로 유명하며 울산 12경 중에서

4경에 이름을 올린 해송림이다. 이곳에는 모두 1500여 그루의 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송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를 맞으며 산림욕도

즐길 수 있어 좋다.

 

공원의 맨 끝은 대왕암이 있다. 간절곶과 함께 새해 첫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구름다리를 건너 대왕암에 올라서면 나와 바다는 한 몸이 된다.

항상 바람이 세게 부는 곳, 뱃전에 하얗게 부서지는 물결 사이로 떠가는

배들. 갈매기들이 그 위로 빙글빙글 날아다닌다.

 

지금껏 걸어온 내 모든 발자국들이 바다에 잠겨 든다.

세상은 넓고도 아름답구나!

모두들 저렇게 성실하고 간절하게 자신의 생명을 소모하고 있구나!

내게 아직도 남아있는 무장이 있다면 과감히 해제하고 바다처럼 모든 대상을

내 가슴에 무조건 포용해야겠다. 그리고 들끓는 바다처럼 끊임없이 나에게

불을 지펴야겠다.

 

바다여!

산다는 거 잠시 멈춰 쉬는 것

이대로 머물 수 없어 떠나간다

여긴 목적지가 아닌 출발점이라

잠시 쉬었다 가는 내 발자국은 씻을 수 없으니

바다가 부르는 파도에 부탁해 볼까!

 

- 혜 강 - (2011. 4. 4)